여운향

위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도

숙박시설


년도

2023년


소묘

여운향 마음 속에 오래 남을(餘) 아름다운 운치(韻)가 있는 곳(鄕)

여수의 주요 관광지인 돌산읍, 그 반대편에 위치한 화양면은 조용한 작은 어촌마을이다. 예전에 귀향을 갔으면 이런 곳으로 가지 않았을까? 좁은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 보면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좁고 비탈진 샛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바다를 향해 내려가면, 비탈진 숲과 석축에 둘러싸인 대지에 이른다. 조발도와 그 너머 고흥의 팔영산이 겹쳐져 낮게 펼쳐지고, 바다 건너편의 자그만 섬들과 그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정겨움을 더한다. 해질녘엔 잔잔한 물결에 비친 저녁노을이 운치 있다.


풍경의 건축

대지로 내려오는 좁은 길에 들어서면 전체가 시야에 들어오는데, 바다 건너 보이는 조발도의 마을처럼 여기에도 자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 객실과 주인집이 마을을 이루고 이 마을이 기존의 풍경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필요한 객실 수대로 건물을 배치하고, 지붕을 평지붕과 경사지붕으로 만들고, 경사의 방향을 달리하여 여러 개의 지붕이 겹쳐 보이도록 했다. 경사지붕의 크기도 높낮이를 조절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울퉁불퉁하게 지붕을 이루는 선이 길게 이어진 섬과 닮았다. 담과 선큰은 산석으로 마감하여 기존에 있던 석축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외벽 면을 분할하여 윗부분은 스타코 마감을 하고 아래쪽 일부는 종석미장을 하여 표면이 거친 마감을 지면과 만나는 부분에 사용했다. 매끈한 재료보다 거친 재료가 더 자연과 어우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은 주변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된다. 풍경에 스며든 건물은 형태 없이 사라지고 운치만 오롯이 담을 뿐이다. 아니, 형태가 사라져야 운치가 남는다. 주변과 어우러지는 것을 넘어, 풍경에 스며들어 풍경이 자아내는 감흥을 담고 여울지게 하는 것이다.


환대의 마당

기존 대지는 석축을 쌓아 2단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레벨을 조정하여 높은 단에서는 주차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을 만들고, 낮은 단의 마당과 선큰을 통해 각 객실로 진입하도록 했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산에서 바다로 물이 흘러내리듯 하강한다. 잔잔히 흐르는 물이 고이듯 작은 박공집들 사이의 작은 마당이 손님을 맞이한다. 마당을 거닐다 보면 건물 사이로, 또는 건물을 관통하여 바다와 섬의 풍경을 연속해서 볼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바다를 볼 수 있도록 건물 사이를 열어주었다. 주차를 하고 안내를 받은 후 객실로 들어서는 과정도 여행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이곳의 정취를 천천히 만끽하면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의 단너비를 넓혀주고 계단의 형태를 세심하게 조정했다. 최소한의 조명으로 잔잔한 밤바다와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건축을 경험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처럼 느꼈으면 했다.


열린 건축

여운향은 가까운 풍경과 먼 풍경이 함께 있다. 가까운 조발도와 멀리 보이는 팔영산은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 파노라마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런 파노라마 풍경을 바라볼 때 방해되는 부분이 없도록, 창을 최대한 가로로 넓히고 모서리도 열어주어 시야가 더 열리도록 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풍경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건물이 방해가 되지 않고 뒤로 물러서 있었으면 했다. 마당에서도 열리고 닫힘을 적절히 조절하여 시선이 닿는 부분을 최대한 열어주려 했다. 인피니티풀이 바다와 연결되어, 객실 내부에서 보면 바다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면 했다. 전통건축에서 볼 수 있듯 안밖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암벽으로 둘러싸인 강을 마주한 경험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평으로 길게 펼쳐진 경관을 가장 돋보이도록 했다.


여운향이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장소로 남길 바래본다. 옛말에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다고 했다. 자연과의 교류도 이와 같을 것이다. 객실마다 잔잔한 바다에 펼쳐지는 달빛의 소나타가 가득 담길 것이다.